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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 별세 기타리스트 작곡자 프로필 나이(생애와 작품활동)

겸손한망고 2024. 12. 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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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김홍탁은 대한민국 그룹사운드의 선구자로,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 전설적인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록 음악의 초석을 다진 인물입니다. 그는 폐암 투병 중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갔으며, 2024년 12월 7일, 향년 80세로 별세하였습니다.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전성기 시절, 김홍탁은 신중현과 더불어 대한민국 초기 록 음악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키보이스와 히식스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에 큰 기여를 했으며, 그의 기타 연주 스타일은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9년에는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홍탁 별세
김홍탁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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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 프로필 나이

출생_1944년
사망_ 2024년 12월 7일 (향년 나이 80세)
직업_기타리스트,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학력_창영초등학교, 동산중학교, 동산고등학교
활동 분야_그룹사운드, 대중음악, 록
소속 그룹(밴드)_키보이스(1963년 결성한 한국 최초 그룹사운드), 히파이브, 히식스

김홍탁TV 유튜브 

김홍탁 수상 내역

  • 1971년 그룹사운드 대상
  •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 2019년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김홍탁 경력

  • 1995년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우리나라 최초 실용음악 고등교육기관이었고, 현재는 SJA실용전문학교)
  • 1970년 그룹 히식스 멤버
  • 1968년 그룹 히파이브 멤버

김홍탁 음악인생 스토리

김홍탁별세
김홍탁TV 유튜브 음악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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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은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잡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기와 선배들과 캑터스라는 밴드를 구성해 인천 미군 부대 등에서 공연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멤버들은 연습실 근처 신포시장에서 튀김 우동 등으로 배를 채웠다고 해요.

 

김홍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한국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키보이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히식스에 합류해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히식스 밴드는 당시 한국 록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기타 연주는 신중현과 함께 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받았으며, 그 영향은 지금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김홍탁은 연주자에 머물지 않고 작곡과 프로듀싱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2024년 김홍탁은 폐암 투병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명예의 전당" 추진을 위해 노력했으며, 1세대 음악인들과 예우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투병 중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며 녹음에 참여한 앨범 전설을 노래하다는 그의 마지막 음반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신곡 웃어보는 시간이 수록되었으며, 김홍탁 트리오와 함께한 특별한 작업으로 기억됩니다.

 

김홍탁 가요무대 1862회
김홍탁 KBS 가요무대 1862회 출연

 

그는 유튜브 김홍탁tv 등 음악 활동과 후배 양성에 헌신했으며, 투병 중에도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명예의 전당 추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24년 8월 KBS 가요무대 1862회 키보이스 동료들과 함께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신청곡을 노래하던 게 마지막 방송이었습니다.

 

김홍탁 작품활동

  • 노래_해변으로 가요, 초원의 사랑, 물새의 노래,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웃어보는 시간, 미소, 나 하나의 사랑
  • 공연_애스컴 페스티벌-인천
  • 도서_김홍탁의 음악일기(세광음악출판사)

 

김홍탁 유산과 평가

김홍탁 키보이스김홍탁 히식스김홍탁 키보이스 히식스
김홍탁 키보이스 히식스 시절(사진=경인일보)

 

김홍탁은 아카데미 운영시절 "스타보다 뮤지션을 꿈꿔라 스타는 반짝거리며 지나가기 쉽지만 뮤지션은 영원히 남는 법이다"라며 아카데미 입학하는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김홍탁은 단순히 음악인이 아니라, 한국 록음악의 기틀을 세운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후배 양성에 힘쓰고 한국 음악의 뿌리를 찾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2019년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죠.

김홍탁 동료였던 윤항기는 “김홍탁은 신중현과 더불어 1세대 기타리스트의 양대 산맥이었다”라고 회고하며, 그를 K-POP의 기틀을 닦은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평가입니다. 또한, 투병 중에도 음악을 멈추지 않은 그의 열정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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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의 별세는 단순히 한 음악인의 이별이 아닌 한국 음악사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할 만큼 영향력이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독창적인 연주 스타일, 그룹사운드의 문화적 도입과 확산, 음악을 향한 끝없는 열정은 한국 대중음악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김홍탁의 삶과 업적은 한국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록음악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 김홍탁의 음악과 정신은 후배 뮤지션들이 기억하고 계승해 가는 것이 과제이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록의 전설, 한국 그룹사운드의 선구자, 전설의 기타리스트 그의 80년의 여정은 김홍탁 별세 후에도 음악적 유산으로 더욱 넓은 세계로 나아가며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인천 출신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홍탁 별세(생전 인터뷰 1)

김홍탁 별세_키보이스 기타리스트(생전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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